토요일
조만식 신부의 일상생활 나누기
눈오는 아침
성탄을 앞두고 전국에 첫눈다운 함박눈이 내린다는 예보입니다. 우리집 키가 작고 새파란 복조리 대나무 울타리에 위에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오래된 감나무와 대추나무에 눈꽃을 피웁니다. 올해 새로 심은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사과나무에도 눈꽃을 피웁니다. 온 천지가 눈으로 덮여 눈이 부시고 황홀합니다.
오늘날의 어린이는 시시한 동요가 촌스럽다고 외면하며 구성진 목소리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정도를 불러야 명함을 내미는 시대가 되었지만,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준다는 동요를 초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부르고 싶습니다. 출퇴근 없는 시골에서 살다보니 마음도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오늘 내린 함박눈이 온 세상의 어둠을 덮고 꽃으로 새창조하듯, 하느님이 나의 모든 잘못과 허물을 덮어주는 신비로운 예복을 눈으로 보내 주셔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주인공으로 초대된 우리가 미리 한번 입어보라고 슬며시 보내주신 것은 아닌지요? 하느님은 자연계시로도 말을 걸어오십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지러운 논쟁을 지켜보노라면, 은참마속(陰慘馬樕)에 나오는 제갈량이 통곡하며 마속의 책임을 물어 병영에 추상같은 군기를 세운 것이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하느님이 피눈물을 흘리시면서 죄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신 것은, 죄를 당신 자신에게 먼저 엄하게 다루시면서 우리에게도 단단히 묻겠다는 선포입니다. 그러나 피할 유일한 길을 마련하셨는데 바로 십자가에서 벗어놓은 예수님의 옷을 내가 겸손히 받아 입는 것입니다.
“야훼를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다. 나의 하느님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뛴다. 그는 구원의 빛나는 옷을 나에게 입혀 주셨고 정의가 펄럭이는 겉옷을 둘러 주셨다. 신랑처럼 빛나는 관을 씌워 주셨고 신부처럼 패물을 달아 주셨다”(이사야 61:10)
주님, 오늘 함박눈으로 찾아오는 자연계시를 읽게 하셔서, 구원의 빛나는 옷을 미리 기뻐 감사하여 입어보고,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하며 기대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