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조만식 신부의 신앙생활 나누기
무명의 그리스도인
세상사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흔히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지만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형통한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을 다해 믿지만 형통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엄연히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만 열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정직을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입에 올리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88올림픽 행사의 밑그림을 그렸고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암투병 중인 이어령교수가 ‘마지막 수업’에서 니이체에 대해서 다른 평가를 내어 놓았습니다. 신은 죽었다고 외쳤던 니이체가 정신병으로 10년을 살면서 오히려 하느님을 깊이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예배 소그룹 활동이 제한되는 확진자 1만명 시대에 살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느냐고 부르짖습니다. 육이오 전쟁 때도 드렸던 예배를 왜 제한하느냐고 항변합니다.
교회활동이 위축되고 마비되었지만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더 많이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공회는 성경 전통 이성 세가지를 강조합니다. 성경과 전통이야 당연하지만 특히 이성이 돋보입니다. 다만 치열함이 동반되어야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아무 고민없는 긍정과, 부정을 거듭하다 들어가는 긍정의 세계는 깊이가 다릅니다. 어느 시대나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치열함이 필수였습니다.
신부나 목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늘 말하고 가르치지만 오히려 본질에서 멀 수가 있고, 무명의 그리스도인은 거꾸로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울 수가 있습니다.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저자가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주님, 당연한 것을 치열함으로 부딪혀가며, 그리스도를 닮아 승리하는, 무명하나 오히려 유명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