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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전통시장

by 사통팔달 주막집 2022. 2. 6.

토요일 아침

조만식 야고보 신부의 일상생활 나누기

 

전통시장

 

작가 김주영은 조선시대 보부상들의 삶을 소설 객주, 현대판 장돌뱅이들의 삶을 소설 아라리 난장에 담았습니다.

 

아라리 난장IMF시절을 만나 실직하고 아내까지 잃게된 한창범이란 사내의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어울리게된 떠돌이 장꾼들과 전국을 누비다가 끝내는 산골 농사꾼으로 자리잡습니다. 여기에는 눈물과 사랑과 고뇌의 모든 인생살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행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전통시장입니다. 현지에서 나고 자란 제철 농수산물을 파는 할머니에게는 사람냄새가 납니다. 투박한 사투리 활기찬 상인들의 언어에는 생명이 묻어 있습니다. 시골장이 아라리 난장은 아니지만 마음먹기 따라서는 그래도 보물상자입니다.

 

설명절을 앞두고 전통시장을 두 차례 방문해서 손님맞이 준비를 했습니다. 한 장소에서 필요한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마트가 편하지만, 그래도 명절 준비는 전통시장이 제격입니다. 주차불편, 손에 물건을 들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면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하지만 전염병으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를 못했습니다. 1주일 내내 매일 손님들이 방문해서 오히려 번거롭고 피곤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왁자지껄 한 자리에 모여 떠들고 웃으며 한 공동체임을 확인해야 힘이 나는 법입니다.

 

돌이켜보면 명절은 교회에서 조상들을 위한 별세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서둘러 길을 나서지만 정체된 경부고속도로 터널을 너댓게 지나야 겨우 김천에 닿습니다. 한숨 돌리고 고향집에 도착하면 저녁이고 벌써 가족들은 흩어진지 오래입니다. 이어서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처갓집 방문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먼 길 피곤해도 힘이 나는 것은 젊어서만은 아닙니다. 고향에는 양쪽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복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는 것이기에 늘 조마조마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고향갈 일도 없어졌습니다.

 

영국의 존 번연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다는 천로역정을 썼는데 여기에는 허영의 시장이 길게 나옵니다. 이 곳은 연중 계속 열리는 시장인데 사고 팔리는 많은 물건들이나 모여드는 사람들이 모두 허영에 가득차 있는 시장입니다.

 

솔로몬은 세상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모두 헛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허영의 시장을 지나는 것, 차라리 정처없는 장돌뱅이들이 진하디 진하게 인생을 사는지도 모릅니다.

 

들을 만한 말을 다 들었을 테지만,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 그의 분부를 지키라는 말 한 마디만 결론으로 하고 싶다. 이것이 인생의 본분이다.”(전도서 12:13)

 

주님, 우리는 한자리에 모이지도 못하고 명절을 보냈습니다. 허영의 시장을 꿰둟어 보는 지혜를 주시고, 오늘을 이길 힘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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