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해결하기 위한 하느님의 묘안
이런 딜레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언제든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품안 안길 수 있는 아름다운 부자 관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죄의 문제를 깨끗하게 용서받고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남보다 선하게 살아도, 고행을 하고 도를 닦아도 소용 없습니다. 죄를 범하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 둔다 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스스로자기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양심에 남는 죄책감을 누르고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까? 죄가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자신에게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에게 범하는 것도 아닙니다. 죄는 하느님에게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관계없이 스스로, 독립적으로 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도 우리의 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처럼 “죄는 없어져라. 내가 용서하노라” 그렇게 말씀 한 마디로 될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느님은 “피흘림이 없니는 죄 사함이 없다”(히 8:22) 는 사죄의 원칙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죄는 인간이 범했으므로 당사자인 인간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도 죄인의 피나 동물의 피가 아닌 의인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신이신 하느님이 어떻게 대신 피를 흘릴 수가 있습니까? 또한 죄를 범한 사람은 무한하신 하느님의 존재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편에서도 죄를 처리하는 문제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해 주시기로아버지와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옥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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