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야고보서 3:18)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두어 들입니다.”
(Peacemakers who sow in peace raise a harvest of righteousness.)
평화를 누리고 심는 자
시집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색시가 밥을 짓다 말고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했더니 물이 부족해서 밥이 탔다’며 자기의 잘못이라 위로하였습니다. 부엌 앞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정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늙어서 근력이 떨어져서 장작을 잘게 패지 못했기 때문에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했습니다. 그 때 이 작은 소동을 들은 시어머니가 와서 ‘내가 늙어 냄새도 못 맡아서 밥 내려 놓을 때를 알려주지 못했으니 내 잘못이라’고 며느리를 감싸주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후에 둘 사이에 평화가 깨어졌습니다. 우리는 보통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 때문에 평화가 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 자기 자신이 불편하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 내적 평화가 깨어집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평화를 얻을 수 없고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이 세상으로부터 평강을 얻으려고 헛되게 구합니다.
오늘 야고보는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두어 들입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만나면, “샬롬(평강이 있을지어다, 평안하십시오)” 하고 인사합니다.
본래 샬롬이란 모자람이 없는 만족의 상태, 완성과 성취와 성공의 상태, 바르고 흠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적 평온의 상태, 고요함과 안전의 상태를 뜻합니다. 인격적 관계에서 말할 때에는 바르고 친밀한 관계, 친구 사이의 우정을 말합니다. 두 국가 사이에서 전쟁이나 다툼이 없는 상태, 또는 친밀한 동맹의 상태, 조화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적, 육신적, 물질적, 정치적, 군사적 형편이 좋아질 때에도 사람들은 일종의 평안의 상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는 야고보가 말씀하신 평화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런 평화는 그 평안의 조건이 사라지면 유리병이 깨지듯이 산산조각이 나서 깨지고 마는 평화입니다.
참된 평화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가져다주시려고 했던 것은 평안(샬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평화를 먼저 받아서 누리고 세상에 심는 사람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라.”(요한 14:27)
주님, 저희가 주님이 주시는 조건없는 평화를 먼저 누리게 하시고, 세상 가운데에도 평화를 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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