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과 양자
영화 <벤허>에 나오는 주인공이 친구의 모함으로 전함의 노를 짓은 노예가 되었지만 전함 사령관을 구출함으로써 그의 양자가 됩니다. 사령관의 특별한 조치로 인해서 노예 신분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는 이제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게 되었고, 사령관의 유산을 합법적으로 물려받을 지위를 얻었습니다. 종과 아들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유를 얻지 못하는 반면에 아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종으로부터 아들로 존재가 변화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와 전적인 신뢰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종의 특징은 두려움이지만 아들의 특징은 자유와 평화와 만족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일한 것만큼 대우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아예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상속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아들의 자유를 누리면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 신앙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영혼 깊이 인식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묶이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 남아있는 저의 삶을 ‘불만제로’가 되게 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불만스러워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끼던 것들을 잃으면 크게 속상하겠지만 또 다른 아낄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좋은 사람들과 헤어지게 된다 해도 그것으로 불만스러워하지 않을 겁니다. 테니스장에 다니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그보다 더 큰 일을 당한다고 해도 불만은 없었으면 합니다. 물론 끔찍한 재앙과 재난을 당하면 당분간 못견뎌하겠지만 다시 정신을 차릴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제 운명이 아무리 나락으로 떨어진다 한들 그것보다 더하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며 완성하실 하나님이 나의 ‘아빠 아버지’이시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선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견디기 힘든 상황을 잘 견딜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할 뿐이지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아들의 삶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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