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조만식 야고보 신부의 일상생활 나누기
사과나무 가지치기
귀농한 사람들이 기본으로 꿈꾸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텃밭에 채소가꾸기, 짐승기르기, 나무 심기입니다. 지난해 시골 내려와서 처음 시작한 것이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금지된 과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럽 기독교 전통에서는 ‘선악과’를 사과라고 생각합니다. 사과꽃의 꽃말이 명성, 유혹이라는 것은 금단의 열매를 나눠 먹어 죄를 범했다는 종교에서 유래한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사과나무 아래였습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소년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때 그 나무는 가진 것은 밑동 밖에 없었지요. 노인이 되어 돌아온 소년이 필요한 것은 편안히 앉아서 쉴 곳이었습니다. 모든 걸 다 내어준 나무는 행복하였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의《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사과나무입니다. 과연 사과는 과일의 왕입니다.
올해의 과제는 가지치기입니다. 과일나무 농사는 가지치기가 50%농사라고 할 만큼 어렵습니다. 조경기능사 공부하며 기본은 알고 있습니다. 주지 부주지 도장지 세력지는 유튜부로 공부하면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가지를 직접 자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아깝고 아립니다. 며칠을 두고 살피고 살피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가지를 자릅니다.
가지치기를 하면 나무가 “아야, 아파요, 아프다고요!”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는다면 낭패입니다. 가지들은 여기저기 질서도 없이 뻗어 나갑니다. 잔가지가 늘어나면 나무에 햇빛과 바람이 고르게 닿지 않습니다. 광합성이 어려워 나무의 건강 상태가 나빠집니다.
가지치기가 끝나면 꽃솎기 열매솎기가 기다립니다. 예쁜 꽃을 대부분 따주어야 합니다. 열 개의 열매중 일곱 여덟 개를 따 주어야 비로소 크고 맛있는 과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 아프기가 첩첩 산중입니다.
가위질의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면, 정작 나무나 꽃의 성장을 망쳐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마음껏 자랄 수 있게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멋진 정원이 되리라는 꿈은 순진한 몽상입니다.
정원사가 과감하고 지혜로울수록 정원은 아름답고도 조화로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절단의 과정은 고통스럽습니다. 나무의 열매와 꽃이 더욱 아름답고 튼실하게 생장할 수 있기 위해서 가지치기는 꼭 필요한 성장통입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넘쳐나지만, 그 모든 열망을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버리면 마음의 큰 줄기가 튼실하게 자리 잡지 못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가치판단과 우선순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성도의 삶은 예수님의 신부로서 준비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수준으로 열매맺기 위해서 가치치기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있고 모순과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이 있습니다.
산불로 울진 금강송 군락지가 풍전등화 기로에 있을 때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개인적으로 대천덕 신부의 성경적 토지문제 접근을 중요한 관전포인트로 꼽았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도를 잘 막아내고 있지만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시야를 넓히면 역사 진보의 기본원리도 일보후퇴 이보전진입니다. 하느님은 가장 정교하고 훌륭한 정원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사야 61:3, 개역)
주님, 우리의 삶은 고해의 바다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가지치기의 고통을 감내하며 예수님의 신부로 준비되는 과정을 소망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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