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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도 종교는 필요한가

by 사통팔달 주막집 2018. 10. 16.

현대인에게도 종교는 필요한가

 

프랑스의 오귀스트 콩트는 사회 과학의 개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인류 역사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엣날에는 종교가 사상계의 근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적 철학사유가 증대되면서 정신계의큰 부분을 철학이 계승했다. 그러다가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종교는 설자리를 성실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예견이 옳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인간학의 개척자로 알려지고 있는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셀러는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인간은 종교적 신앙, 철학적 사유, 과학적 영역을 동시에 갖고 있으나 시대와 사회적 여건에 따라 비중의 차이가 있을 뿐 탐구의 과제와 영역이 다를 뿐이라고 보았다.

 

두 철학자의 주장이 다 정당할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는 현실이 부분적으로 두 주장 모두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종교의 영역이 좁아졌다고 해서 종교적 신앙이 사라진 것도 아니며 인간적 실존의 근거로서의 종교적 기대가 근절될 수도 없겠기 때문이다.

 

무한의 강가 이편에서 저편을 보고

 

나는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하는 때가 있다.

 

어떤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한 사람이 무한이라고 불러서 좋은 넓은 강가에 서서 강 저편을 응시하고 있다. 그때 한 사람이 옆에 다가와서 나는 당신이 젊었을 때 이 강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디서 헤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왔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은 사람이 말했다. ”시간과 더불어 살면서 어떤 영원한 것이 있는가 싶어 여러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학문과 예술이 있는 곳도 갔었고 정치나 경제적 이념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영원은 없었습니다. 더 늙기 전에 혹시 이 강을 건너 저 피안에는 영원이 있을까 싶어 다시 이곳까지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사람은 다시 돌아가 찾아보세요. 이 강은 건널 수도 없고 또 한번 건너가면 되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편하고 즐거울 것입니다.”라고 권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은 다 다녀보았습니다. 다시 간대도 저에게는 해답이 없을 것입니다. 알고 싶은 것은 이 강 저편에는 영원이 있는가 묻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옆의 사람이 강 저편에는 영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강을 혼자 건널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건너간다고 해도 다시 돌아오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강가에 서 있던 사람이 다시 물었다. “강 저편에는 영원을 확증할 무엇이 있습니까?”“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그것이 진실이라면 갈 수 있는 길과 방법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강 이편에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강 저편으로 가겠다고 결단을 내린다면 내가 안내해드리지요.“ ”그러면 나를 찾아온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때 그 사람은 인생에 걸처 단 한번이면서 마지막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나를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십시오.“라는. 진정한 의미의 종교적 선택과 결단은 그런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기독교의 경우 과거에는 자신을 믿고 스스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살았으나 이제부터는 예수의 교훈과 삶의 내용을 나의 가치관과 인생관으로 삼고 살겠다는 엄숙한 선택이다. 그것은 스승이나 존경하는 어떤 사상가의 교훈보다 예수의 교훈 이상이 없고 사회적 희망을 안겨주는 가르침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 있을 때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공부했다. 참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칸트의 학설이다. 그러나 예수는 아주 쉽게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원하는 것같이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모든 사람의 대인관계의 교훈이다.

 

그래서 어떤 물리학자의 말을 지금고 기억하고 있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적 물리학자가 어떤 가설을 예고하고 세월이 지나면 수학자들이 그것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 그 원리를 실험을 통해 확증하면 우리 모두가 받아들인다. 그런 것처럼, 종교적 천재라고 볼 수 있는 인생의 스승이 가장 영구한 진리를 가르쳤다면 그것을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분들의 가르침이 몇백년 또는 수천 년을 두고 우리들의 인생관이 되는 것은 역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자의 교훈을 2500년 동안 이어오기도 했고 석가의 가르침에 모든 삶의 지혜를 모으기도 한다. 크리스천들은 예수의 교훈보다 앞서는 가치관과 인생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백년을 살다보니, 김형석, Den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