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직면하기 위하여 필요한 대안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세상에는 고통과 아픔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세족적 관점, 다른 하나는 종교적 관점입니다. 세속적 관점에서 볼 때 세상은 보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거기에는 하나님도 없고 내세도 없고 영혼도 없습니다. 지위, 돈, 건강, 아름다움--- 그런 것들이 우리들 인생에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고통은 우리의 건강을 빼앗고, 재물과 아름다움을 빼앗아 갑니다. 세속적 사람들에게 고난은 삶의 의미를 파괴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명예와 부끄러움을 중시하는 세상에서는 고통에 대한 준비를 전혀 시키지 못합니다. 그저 고통당할 때 울지 말라고 할 따름입니다. 강해지라고, 그리고 그런 감정을 표현하지 말라고 합니다.
종교적 관점에서는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먼저 카르마(업보)라른가 윤회등은 믿는 종교에서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겠습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이 불공평하고 부당한 것이라고 느끼더라도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유인즉 전생에서 저지른 잘못 때문에 현생에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카르마를 믿는 종교에서는 사회적인 불법과 불공평에 대해서 어떤 분노도 표현하지 않습니다.
불교도들은 고통당하는 이유에 대하여, 지금 이 세상이 신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보이는 물질적 세계는 망상일 뿐이며,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당신도 망상일 뿐이라고 , 그래서 당신이 고난을 받도 있다면 당신의 마음을 고난으로부터 분리시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 모든 것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예와 부끄러움을 앞세우는 사회와 달리 기독교에서는 고통은 아픈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편의 1/3 이상이 ‘애가’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의 고통과 아픔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받는 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카르마의 종교와 달리 기독교에서는 때로 고통은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게 보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욥기가 전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때로는 순수한 사람도 고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르마 종교가 모든 고난은 당연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 안에서 전혀 죄가 없으시고 문제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불교도들이 고통을 당할 때 고통으로부터 마음을 분리시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고통과 자신을 불리시키지 않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괴로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으로 그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고통의 한복판에서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하여 주십시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고난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면 그 고난이 오피려 당신을 강력하게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