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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의미

by 사통팔달 주막집 2017. 12. 19.

하느님의 소유로 구별된 존재




먼저 성도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구별된 자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거룩함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말이 능동형이 아니라 수동형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구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하여 구별된 거싱고, 내가 거룩하게 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구별하고 거룩하게 했습니까?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자마자 나라는 존재는 하느님이 자신의 소유로 완전히 떼어 놓아 성령으로 인 치신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43:1)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구속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값을 치르고 샀다는 것입니다. 죄 때믄에 사탄에게 팔린 우리를 하느님이 아들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고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느님의 것이라고 따로 구별해 놓은 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인 것입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대체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이 자신의 것으로 구별하신다는 말입니까? 이건 황송하다는 말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는 아기에게 손에 쥔 것을 달라도 해 보십시오. 절대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억지로 빼앗으면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이렇게 어린 아기도 자기 손에 쥔 것애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이는 데, 하물며 예수님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고 하느님의 것으로 구별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하느님의손에 붙들린 우리가 바로 구별된 자 성도인 것입니다.

 




거룩함을 입은 사람




성도의 두 번째 의미는 거룩함을 입은 자라고 했는데, 이것은 구별된다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하느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까? 하느님의 소유가 되려면 거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은 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하느님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정결케 하여 완전히 거룩한 자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님의 것이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거룩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는 자는 다 거룩합니다.

 

카톨릭에는 성자를 따로 구별해서 숭배하는 데 그것은 어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는 자들 중 누군가 성자이면 다른 사람은 성자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거룩한 사람 성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의롭다고 하신 분이 하느님이신데 누가 감히 우리에게 죄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이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뿐입니까? 성령님이 마음 가운데 거하시면서 우리의 지, ,, 모든 육체와 영혼에 묻은 죄악의 오물을 다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보실 때 우리가 거룩한 자 성도인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하고 물으면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룩한 사람이지요? 완전히 용서받았지요?” 라고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합니다. 자신이 없어요. 이와 같은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사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럽게 여기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해 나는 형편 없다. 도무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해서 자신을 용서받지 못할 자로 여기도록 유혹합니다. 그래야 예수를 믿더라도 쉽게 절망하고 결국 , 아무리 해도 이 모양인데 믿어서 뭐하겠나?’ 하면서 신앙을 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혹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속히 던져 버리십시오. 사탄은 우리의 더러운 것을 보게 합니다.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을 절대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기 자녀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언제나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인신이 아주 중요합니다. 자신이 거룩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싶으면 자신의 입장에서 보지 마시고 하느님 입장에서 하느님의 관점으로 보십시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목사인 저도 스스로 가만히 살펴보면 악한 감정도 있고, 거짓된 말과 거짓된 생각이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죄인인 것을 스스로 느낍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알면서 스스로 거룩하다고 하면 위선이지 않나요? 그러니까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는 거룩하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왜 우리를 거룩하다고 하십니까? 하느님이 나를 보실 때는 예수님 안에 넣어서 보시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예수님과 나를 따로 세워 놓고 보시는 법이 없습니다. 또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서 나를 보시죠. 이렇게 하느님 편에서 우리를 보면 우리는 완전히 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죄와 허물이 다 가려집니다. 또 우리를 성령으로 속사람부터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 보실 때는 우리가 항상 거룩하게 보십니다.

 

만약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일평생 안절부절하다 인생 끝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거룩한 하느님의 소유라는 분명한 자의식이 없기 때문에 사탄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일상생활에서도 승리할 수가 있는데, 그 출발점은 내가 거룩하게 살아야지가 아니라 나는 거룩하다입니다. 내가 거룩하다는 자의식에서 성결한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지, 이제 거룩해져야지 라고 다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접근 방법이 틀립니다.

 

떨기나무 앞에 선 모세에게 하느님이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네 발에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을 거룩하니라.” 모세도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에게 어떤 죄나 결점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하느님 앞에 섰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거룩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똑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 앞에 나왔으니까 모세처럼 하느님 앞에 신발을 벗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 안에 어떠한 모순이 있다해도 그것 때문에 하느님이 주신 거룩함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거룩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입니다.이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분은 이미 바뀌어졌습니다. “어디, 하느님의 자녀가 한번 되어 보자, 열심히 해서 하느님의 마음에 들어 보자가 아니요, 나는 이미 하느님의 것이기에 하느님이 것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초점을 바꾸지 마세요.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옥한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