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묵상

명감독 명연기

사통팔달 주막집 2022. 2. 27. 06:19

토요일 아침

조만식 야고보 신부의 일상생활 이야기

 

명감독 명연기

 

봉준호와 송강호가 만나면 아카데미상 기생충를 낳습니다. 정이삭과 윤여정이 조우하면 오스카상 미나리를 창조합니다. 그래서 배우라면 누구나 명감독을 만나 명배우가 되고 싶어합니다.

 

영화는 세상 모든 사람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의 어린시절 단체영화 관람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후 수업 빼먹는 것은 덤입니다. 대한 뉴우스가 끝나고 본영화가 시작되는 벨이 요란하게 울리면 얼마나 가슴이 두근두근 했는지 모릅니다. 화장실에 숨어가며 공짜로 몇 번이나 영화를 보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나 감독이 되고 누구나 배우가 되며, 언제 어디서나 극장이 되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장모님 구순 잔치 동영상을 65인치 대형 티비에 올리고 보면 졸지에 어머니는 명배우가 되고 나는 명감독이 됩니다.

 

며칠전 늘 전원일기만 전문으로 보시는 장모님에게 극장판 영화 소나기를 선물했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싹트는 무대 개울가 다리를 보고는 통나무 다리다시골학교를 보고는 코스모스 예쁜 꽃길에 학생이 참 많다,’고 좋아하십니다.

 

소나기는 1952신문학지에 처음 발표되어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는 황순원 집필의 단편소설입니다.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첫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은 1960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는 한국 단편 소설의 전설 중의 전설입니다.

 

작가는 참혹한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루지 못한 순수한 사랑에서 구원이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의 동심과 아름다운 첫사랑은 자연 그자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TV문학관의 소나기(2005)가 원작에 충실하다면, 고영남 감독의 소나기(1978)는 원작을 재창조에 가까운 발상의 전환으로 각색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전자는 까무잡잡한 소년과 분홍색 스웨터에 남색 치마를 입은 소녀가 주인공입니다. 후자는 도회지풍의 소년과 흰 블라우스에 빨간 치마를 입은 소녀가 주인공입니다.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 초 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 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애잔한 소년을 위해서 원작에 없는 이야기를 더하여 소년의 아픔을 달래고 있는 감독에 생각이 미치면 고맙고 감사한 마음까지 듭니다. 한복을 입은 소년 소녀가 부모님과 탈곡기로 타작을 하는 장면을 보면 꿈속에서라도 해피엔드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감독은 힘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더하거나 뺄 수 있습니다. 단역을 주인공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감독의 힘은 각본을 각색할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우리 인생도 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하여 아쉬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고 미련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너무 짧고 허무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뒤로는 멀리 에덴동에 닿아 있고 앞으로는 요한 묵시록의 새하늘과 새땅에 뻗어있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살아 계시며 우리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세상에 고민할 일이 무얼 그렇게 많겠습니까?

 

명감독은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만나기만 한다면 누구나 명배우가 되고 명연기를 펼치고 아카데미상을 받습니다. 도처에 역전이 일어나고 모든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위대한 결말입니다. 찬란한 결말입니다.

 

세상은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둡습니다. 국내에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장동을 두고 누가 몸통인지 공방이 뜨겁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명감독을 만나고 싶습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한편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시편 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