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제일되는 목적-누구나 하느님의 영광
오늘의 묵상(야고보서 3:11-12)
“같은 샘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이 함께 솟아 나올 수 있겠습니까? 내 형제 여러분, 무화과나무에 어떻게 올리브 열매가 달릴 수 있으며 포도덩굴에 어떻게 무화과 열매가 달릴 수 있겠습니까? 짠 물에서 단 물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Can both fresh water and salt water flow from the same spring? My brothers, can a fig tree bear olives, or a grapevine bear figs? Neither can a salt spring produce fresh water.)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누구나 하느님의 영광
오늘 야고보는 강하게 질문합니다. 짠 물이 단 물을 내는 것을 보았느냐?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 맺는 것을 보았느냐? 그리고 단언합니다. 너희가 저주의 말을 한다면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다. 율법 하나를 무시하는 것을 보면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저주의 말을 하고 산다면 다른 좋은 말은 전부 거짓이요 엉터리이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사람을 저주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신 말씀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입니까?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가 소경된 것은 그 사람의 죄 때문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그에게서 하느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죄 때문이고, 저주받은 것이라면 오히려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맹인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혜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건강을 통해서 하실 일이 있습니다. 신체의 장애를 통해서도 나타내실 하느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불행중의 불행처럼 보이는 일을 통해서도 주님은 일하십니다. 저주의 절정인 십자가를 통해서 역전의 최고봉인 부활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개혁교회 신앙기본서 소요리 문답(1649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1 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묻고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참된 삶의 목적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합니다. 의미있는 삶, 권태를 모르는 삶, 보람있는 삶일 뿐만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운 삶입니다.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자기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요한복음 9:2,3)
주님,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소서. 우리가 하느님과 즐거워하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