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완전한 믿음-십자가와 부활
오늘의 묵상 (야고보서 2:22)
“당신도 알다시피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You see that his faith and his actions were working together, and his faith was made complete by what he did)
아브라함의 완전한 믿음-십자가와 부활
시인 김광균이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고 표현한 것이 생각납니다. 본래 종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만 들릴 뿐인데 푸른 종소리라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종소리가 푸른색이라니요?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따진다면 우스운 일입니다. 시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하면서, 말로 할 수 없는 깊은 것을 말해 줍니다.
개미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듯이, 사람이 하느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이야기입니다.
‘아들 이삭을 잡아 제물로 바치라니, 이런 잔인한 하느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행동으로 완전해졌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러 모리아산으로 걸어 가면서 ‘차라리 내가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내가 죽고 싶다’고 수도 없이 되뇌었습니다. 하느님은 아들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비통한 마음은 받고,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죽이기를 멈추라고 다급하게 말씀하십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뿔이 덤불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숫양 한 마리가 보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미리 본 것입니다. 이삭을 돌려 받으면서 밤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다 자라서 성인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이 어떠하신가를 헤아렸습니다. 죽음까지 갔던 아들을 통해서 부활의 모습도 힐끗 희미하게 보았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아브라함이 나의 때를 미리 보고 기뻐하였다고 직접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고 과연 그 날을 보고 기뻐하였다” (요한 8:56)
완전한 믿음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나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로마서 8:32)
주님, 저희가 아들까지 기꺼이 내어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붙드는 큰 시인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