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빼기의 원리입니다
오늘의 묵상 (야고보서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까?”
(Was not our ancestor Abraham considered righteous for what he did when he offered his son Isaac on the altar?)
믿음은 빼기의 원리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은 결심만 하면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에서 이해한 것이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내려오는 데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고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땅을 떠난 것이 75세였습니다. 그리고 100세에 비로서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을 바칠 때의 나이를 10살로 보더라도 3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더하기 원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기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소유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는 빼기의 원리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내가 의지하는 모든 것을 하나씩 다 빼내고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의 패턴이 더하기로 살다가 빼기로 넘어가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하기만 해도 살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빼면서 살다니요? 당연히 어리석어 보입니다.
십자가는 빼기 원리의 결정판입니다. 가장 밑바닥 아무 것도 의지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하느님 만을 힘차게 붙들 수 있고,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까지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더하기에 익숙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에집트로 내려갑니다.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에집트를 더하고 이스마엘을 더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실패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믿음이란 단계를 거치면서, 고난을 거치면서, 실수를 통과하면서, 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느님이 원하는 믿음의 자리에 갈때까지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았습니다. 믿음은 콩나물 자라듯 그냥 물만 먹고 쉽게 쉽게 자라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시험하시려고 이사악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기꺼이 바쳤습니다.”(히브리서 11:17)
주님, 저희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를 통해서 성숙한 믿음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시고, 고비 마다 은혜를 더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