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안에 든 쥐
오늘의 묵상 (야고보서 2:19)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You believe that there is one God. Good! Even the demons believe that -- and shudder.)
독안에 든 쥐
간첩은 온갖 방법으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적의 심장부까지 깊숙이 침투해 고급정보를 빼내어 적을 무력화 시킵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죄는 우리 속에 들어와 도사리고 살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례 입문자가 끊겠다고 선언하는 세상과 정욕과 마귀 세가지 중 정욕의 정체입니다.
죄는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삶을 난장판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인간이 가끔 천사를 닮았지만 때로는 그렇게 악독할 수가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대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마귀가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는 에덴동산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예수님만 달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마귀도 달렸고 나도 달려 죽었습니다. 근본적인 우주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입만 열면 십자가 십자가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안에 숨어있는 ‘독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된 죄’에게 단호하게 명령해야 합니다. “나는 너의 정체를 알고 있다! 온갖 충동질을 멈추고 조용히 해!” 정체가 탄로난 간첩은 자유로울 수가 없는 법입니다. 이제 죄는 예전처럼 마음대로 종횡무진 할 수가 없습니다. 성인병처럼 관리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쁜소식 복음입니다. 오늘 야고보서는 마귀들도 하느님의 존재 앞에서 벌벌 떨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년 다윗은 혈혈단신 혼자의 힘으로,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천하장사 골리앗을 물맷돌로 제압해 버리고 승리합니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네가 욕지거리를 퍼붓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느님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이스라엘이 모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하에 알리리라.”(삼상 17:45-47)
지금도 골리앗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교회를 비웃고 기도를 비웃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정보화사회의 현대인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세상은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고 세상에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유를 내 안에서 먼저 찾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주님, 저희가 내 안에 숨어 있는 죄를 독안의 쥐로 관리해서,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나날이 승리를 더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