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성경

윤정희의 알츠하이머와 시

사통팔달 주막집 2019. 11. 12. 17:59

윤정희의 알츠하이머와 시

 

 

윤정희는 알츠하이머 병을 10년 째 앓고 있다고 남편 백건우가 밝혔다. 남편은 아내와 같이 이 병의 고통을 소르란히 짊어지고 살았다. 이제 이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어 고통의 한 자락을 흘려 버리며 인생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인가?

 

 

알츠하이머 병은 현재의 기억을 망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유명하거나 무명하거나 구분하지 않고 찾아오는 질병이라 무섭다. 심해지면 남편도 아들고 딸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과 사건을 연결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래사는 것은 원하면서도 치매라도 결려서 살아갈까 보아 불안해하고 걱정하며 살아간다. 정작 치매에 거린 본인은 심각성을 모른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치유의 희망이 없는 병은 가까운 가족에게 끝없는 고통을 주기 때문에 무섭다.

 

 

윤정희는 헌신적이고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옆에서 도우며 함께하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치매의 고통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이것마저도 수용하는 가운데 인생의 의미와 비밀이 풀리면서 시(詩)가 되는 것인가?

 

 

윤정희는 10년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마지막으로 출연했다. 윤정희가 배역한 양미자는 가난하여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중학생 손자하나 데리고 사는 60대 할머니다. 미자는 지역 문화센터에서 시 강좌 수업을 받으며 일상생활 가운데서 깊이 보는 것이 시를 쓰는 길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데 마을에 성폭행사건으로 소녀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다섯명의 범인 중의 한 명이 바로 미자의 손자이다. 범인의 아버지들은 돈으로 적당하게 이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계획을 꾸민다. 미자는 500만원이 없어서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미자가 돌보는 할아버지와 관계를 가짐으로서 이 돈을 마련한다. 이제 사건은 감쪽같이 잘 해결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미자는 아픈 마음으로 성폭행범 손자를 경찰에 알린다.

 

 

시란 무엇인가? 표면의 아름다움은 시의 시작일 뿐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갈수록 시는 깊어지는 법이다. 인생의 사람의 고통을 끌어안고서 몸부림치면서 고통속에 숨겨진 처절한 아름다움을 마주보는 가운데 시는 나오는 것이 아닐까?

 

 

미자는 알츠하이머를 앓는다. 시인은 언어로 말한다. 그러니 언어를 잃어버리는 미자가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시이기도 하다. 미자는 먼저 자기가 돌보는 할아버지의 성적 상대가 되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면서 성폭행당한 소녀의 고통을 같이 먼저 나눈다. 이미 합의금으로 해결된 문제를 굳이 경찰에 알리는 할머니의 마음은 고통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라고 이끈다.

 

 

새삼 사랑과 정의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폭력이다. 정의가 없는 사랑은 회피다. 사랑과 정의가 서로 손을 잡을 때 여기에서 참다운 시가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과 정의의 만남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만이 제시한 높은 길이다. 인간이 사랑과 정의에 만남에 도전하는 곳에 참다운 인생이 있고 시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