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의 호소
멸치의 호소
눈이라도 감고 죽게
이종문
나는 작은 멸치, 너는 참 잘난 사람
너여! 나의 몸을 낱낱이 다 해체하라
머리를 똑 떼어내고 배를 갈라 똥을 빼고
된장국 화탕지옥에 내 기꺼이 뛰어들어
너의 입에 들어가서 피와 살이 되어 주마
그 대신 잘난 사람아 부탁 하나 들어다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내 머리를
제발 대가리라 부르지는 말아주고
뜰에다 묻어다오, 눈이라도 감고 죽게
4월 1일은 부활주일입니다. 새벽 6시 대성당 감사성찬례에 다녀오는 길입니다.시청역 성공회 시항아리에서 시 하나 ‘눈이라도 감고 죽게’를 무작위로 뽑았습니다.
시인은 멸치가 눈을 부릅떠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습니다. 시인은 곧 멸치가 되어 소리지릅니다. 머리를 떼어내고 배를 가르고 된장국에 들어가는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겠다. 그렇지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대가리를 눈이라도 감게 묻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일단 이 시가 마음에 공감을 불러 일어키는 것은 같은 우리도 같은 경험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며칠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멸치처럼 십자가에서 갖은 모욕과 멸시를 당하면서 기꺼이 만인을 위한 피와 살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묻어 달라고 호소하지는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단절에 대한 절규, 목마름에 대한 갈증 호소를 하시지만, 용서, 낙원, 이웃사랑, 온전한 의탁, 승리의 선언을 하시면서 눈을 감습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깊은 영성, 행동하는 신앙 대한성공회’로 넘어갈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드와 십자가에서 연합일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시퍼렇게 뜬 눈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