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자리바꿈
예수님의 자리바꿈
이제 죄 사함을 받는 길은 열렸습니다. 어떻게 열렸습니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의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죄의 값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원한 하느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결과가 구속입니다. 옛날에는 주인이 노예에게 자유를 주기 위하여 돈들 지불하는 것을 구속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을 자신의 생명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는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하느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무엇이 되게 하셨습니까? 죄 덩어리, 죄 그 자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우리를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내용을 가지고 ‘자리바꿈을 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느님은 예수님과 우리의 자리를 바꾸어 주셨습니다.죄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닌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피를 보시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죄인이 되고 우리가 의인이 된 원리인 것입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차려놓고 사람들을 오라고 초청을 했습니다. 초청받은 사람들이 오지않자 화가 난 임금은 종들을 시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데려다 자리를 채우게 했습니다.
임금이 들어와서 자리를 둘러보는 데,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친구여, 왜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까?” 그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임금이 신하에게 명령했습니다. “이 사람을 끌고 나가 바깥 어두운 데 내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예복을 입지 않은 죄값을 톡톡히 치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옷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에게 죄 없는 예수님의 깨끗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다시는 하느님이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기자는 하느님이 다 용서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능히 하느님께서 택하신 자를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가 하느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2-34)
하느님이 이렇게 죄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주신 하늘의 복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옥한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