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선처
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선처
그런데 우리 가운데 그 누가 하느님과 같은 거룩함과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놀랍게도 하느님은 불완전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기 위해 은혜의 길을 이미 열어 주셨습니다. 어린 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선처입니다.
창세 전에 하느님이 자녀로 택한 사람은 어떤 계기를 통해 마음 속에 예수님을 믿어야 하겠다는 의지가 생깁니다. 선택받은 사람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지요.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기초작업을 하십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아, 내가 그동안 헛살았구나, 예수를 믿어서 마음의 평안이라도 얻어야겠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로 소생하는 것입니다.이를 일컬어 중생 곧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일단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확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느님이 내리시는 처방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아담부터 시작된 원죄도, 내가 살면서 지은 고범죄도, 장차 하느님 나라에 가기까지 나로 모르게 범할 수 있는 그 어떤 죄도, 예수님의 공로로 깨끗이 용서하시고 우리를 항상 의로운 자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나고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틀림이 없는 데, 살다 보니 고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죄 없다 여기시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주셨지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면 자녀 될 자격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기록했듯이 옛사람과 새 사람의 갈등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다투는 전쟁터가 된 것입니다. 신분은 있되 자격은 없으니 그야말로 모순이지요.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자녀라는 신분은 얻었지만 계속 속에서 썪는 냄새가 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처럼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는 것은 까마득한 얘기처럼 들립니다. 어떻게 그 수준처럼 올라갑니까? 어떻게 해야 하느님이 코를 막으시는 일이 없으실까요?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의 이러한 고민을 정확히 꿰뚫어 보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는 과정에 기가 막힌 원칙 두 가지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옥한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