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통해 하느님을 본다
나를 통해 하느님을 본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신실한 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두 가지 치명적인 결과가 따르게 됩니다. 먼저, 우리로 인해 사람들이 하느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됩니다. ‘흥, 믿는다는 사람들이 저 모양인 것을 보면 하느님도 별 수가 없구나, 예수? 뭐 대단하지도 않구나.’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자식이 함부로 대하는 부모를 공경하는 이웃 봤습니까? 부인이 무시하는 남편을 존경하는 이웃을 보셨습니까? 우리가 진진하게 믿지 않으면 우리의 태도를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느님을 무시합니다.얼마나 기가막힌 상황입니까? 만약 내가 예수님을 적당히 믿는다면 내 자녀가 예수님에 대하여 얼마나 진지하게 여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모인 나 때문에 내 자녀들에게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실하지 못할 때 또 하나 커다란 문제가 따릅니다. 바로 이 사회가 하느님을 추방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이나 하느님의 방법은 안중에도 없이 세상의 유행이나 풍조를 따라 살면,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하느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현대판 무신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의 구별된 소유, 곧 성도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존재라는 자의식을 갖고 거룩한 존재답게 살아야 합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하느님앞에서 행하는 자들이지요. 그래서 서로 속고 족이는 세상에서 “저 사람이라면 신뢰할 만해”라고 인정받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시시한 존재가 이닙니다.우리가 이렇게 올바른 자의식을 가지고 살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느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옥한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