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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자의식

사통팔달 주막집 2017. 12. 19. 09:31

그리스도인의 자의식





꼭 맞아 떨어지는 말은 아닙디마만,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우리는 어떤 면에서 가장자리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자리 인생이기 때문에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쉽게 상처 입고 세상에 휘둘립니다. 세상을 아주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을 볼 때 나 자신은 무언가 모자라는 거같이 느껴지거, 세상 사람들에 비해 자신은 웬지 뒤처지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자꾸 삶의 의욕을 잃게 되지요. 이런 게 예수 믿는 사람의 현실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어디 세상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무슨 것이라도 해서 살아보겠다고 그럽디까? 아니요. 이제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사람들처럼 그런 자세로 뛸 수가 없어요.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예수 안 믿었으면 까짓 것하고도 덤벼들 일도 예수 믿는 내가 이래선 안 되지 하고 자기 점검을 합니다. 그러다 보닌 이것도 안 되고 저 것도 안 되고 격국은 자신이 못난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런 고통을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정상이냐 하면 아니에요. 정상입니다.

 

우리 주변에 호화롭게 사는 사람들과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교해 보면, 크게 못난 것도 없는데 그저 신앙적으로 정직하게 살려고 하다 보니까, 또 헌금하느라 별로 모아 둔 돈도 없고 하니까 그저 소박하게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또 물질적으로 좀 있다고 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다 보면 그만 상처 받기가 쉽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위치가 세상에서 쉽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그 다음 한 걸음 더 나아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오히려 그들보다 앞선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유일한 해답일 테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예수 믿는 사람 치고 하느님 생각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에 몇 번씩 기도하고, 성경 말씀도 조금씩 읽고, 믿는 지체들과 만나서 각자 삶에서 경험한 하느님 이야기도 나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상처를 입으면 잘 극복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열등의식에 갇혀 헤어나지를 못했요. 너무 오래 고통하고 씨름하느라 진이 다 빠집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래요. 뭔가 잘못됐지요.

 

하느님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까? 아니에요. 하느님 생각하되 막연한 하느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막연하게 생각해요.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이 막연한 하느님 생각에 잡혀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틀이 잡혀 버렸어요. 그러나 답이 벌써 뻔하게 나오네요. 이렇게 되면 하느님 생각을 해도 그것이 내 삶에 실질적으로 힘이 되지 않아요. 우리는 구체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있는 어떤 구체적인 말씀을 가지고 그것과 하느님을 연결시켜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하느님이 나에게 해주실 일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고 바라고 기뻐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지요. 믿지 않는 사람은 꿈도 못 꾸는 그런 세계가 우리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서 공급받는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 우리의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으로 신분이 바꿔었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통해 아들이 되었고, 의인이되었으며,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신분이 변화된 성도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예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1:1)

 

성도와 신실한 자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의식입니다. 저는 성도란 하느님 편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이고 신실한 자란 사람 편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옥한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