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길

사랑의 힘에 사로잡히다

사통팔달 주막집 2017. 12. 19. 09:28

사랑의 힘에 사로잡히다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의 고지에 오르게 되면 놀라운 일들이 우리 안에 일어납니다.먼저 그 사랑을 알면 알수록 심령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걱정거리가 생겨도 하느님의 사랑을 조용히 묵상하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어느새 이런 확신이 차오릅니다.

 

하느님이 인도해 주실 거야. 하느님이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데,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인데, 뭐 이 정도 문제 가지고 걱정하지 말자. 불안해 할 필요없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 주실 거야.’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만큼 근심에서 내가 벗어나게 됩니다.

 

요즘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힘든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답답하지요? 여기 넣어도 안되고, 저기 넣어도 안 되고, 학위를 따도 안 되고, 자격증도 소용이 없고 얼마나 답답해요. 하느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도 바로 응답이 없습니다.그런 때일수록 조용히 말씀을 들고 골방에 들어가서 하느님 앞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는지, 또 사랑하고 계시는지 묵상해 보세요. 그 사랑이 얼마나 풍성한지, 나대신 죽을 만큼 나를 사랑하신 그 분을 한번 바라보세요. 그 사랑에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두려움과 고통에도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어요.

 

둘째로 그 사랑의 풍성함을 맛보면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느님이 나를 이토록 사랑하신다는데 나를 이대로 두실 리 없잖아? 좋은 일이 있을 거야하는 생각으로 모든 것들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지요. 소망이 있으니까 비관하지 않아요. 자신을 그렇게 격려할 줄 알아요. 반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세상이 두렵고 비관적으로 말하고 소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셋째로 그 사랑을 깊이 알수록 우리는 강해집니다. 강한 자가 돼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에 사랑에 빠진 젊은이를 아무도 못막아요. 부모도, 형제도, 아무도 말리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우리를 못 막아요. 인생의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사랑에 빠진 우리를 좌절시키지 못합니다. 비참한 운명이 닥쳐도 그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확실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경험하는 사람은 세상을 넉넉히 이길 힘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이 그렇게 선언하고 있잖아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고 같으니라”(8:35-36)

 

여기서 우리가 실제로 당해 본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그런 극한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단언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위헙을 이길 힘이 있어요. 어떻게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그런 잔혹한 자리에 끌려가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라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꽉잡고 있으니까, 아무도 우리를 이길 자가 없어요. 이 사랑을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마흔네 살에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에드워드 페이슨이라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가 병상에 있을 때 자기 누이에게 보낸 편지 중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하느님은 내가 받은 복을 하나씩, 차례로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오셔서 그 자리를 대신 채우셨습니다. 지금 나는 불구자가 되어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내 생애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죽음의 강이 내 앞에 놓여 있지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죽음의 강이라는 것도 내게는 한 발로 폴짝 뛰어 넘을 수 있는 조그마한 개울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을 누가 꺾을 수 있습니까? 죽음도 그를 꺾을 수 없어요. 누가 이런 사람을 패배자라고 부르겠습니까? 아무도 못하지요. 하느님의 사랑에 꽉 붙혀 있기 때문에 강합니다. 강해요. 하느님이 사랑하시기에 그 사람은 강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뻐하는 마음을 얻습니다.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기분좋게 만듭니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나게 만듭니다. 영국의 어느 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하느님의 자녀에게 있어 기쁨이란 하나의 깃발과 같다.” 영국에 가면 왕족이 사는 성이 있지요. 그 성 안에 여왕이 머물고 있으면 깃발이 휘날립니다. 그 깃발을 보고 사람들은 , 여왕이 저 성에 계시는구나!’하고 알아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뻐하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내 마음에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표시하는 깃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볼 때 , 저 사람 마음 속에 하느님이 계시는구나! 하느님의 사랑이 저 사람의 마음에 가득하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우리는 하느님 앞에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찮은 것이 아니에요. 잠깐 느끼다가 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상식으로 조금 알고 말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초월하는 신비가 사랑이요,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있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그 사랑의 충만함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 간구합시다. 그 사랑이 나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내게 소망을 줍니다. 나를 강하게 합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나보다도 더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바로고 해!”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옥한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