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의 사랑을 알다
4차원의 사랑을 알다
하느님의 사랑의 너비를 재고 싶습니까? 십자가 앞으로 가십시오. 하느님 사랑의 길이를 알고 싶습니까? 십자가가 가르쳐 줄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얼마나 높나요?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을까요 ? 십자가 앞에 엎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다 사랑할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지셨습니다. 어떤 죄인도 다 품어 주실 수 있는 넉넉한 품,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의 너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쪼깨어 주느라고 부족할까요? 아니에요. 우리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시되 각 사람이 충만할 만큼 쏟아 부어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의 길이는 또 더떻습니까? 십자가에서 확증하신 그 사랑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월하여 영원히 지속됩니다. 우리가 이전에 지은 죄를 영원히 기억하지 않으시며, 이후의 죄 때문에 또다른 십자가가 필요 없을 만큼 그 사랑은 영원을 가로질러 존재합니다. 그 사랑은 영원토록 끊어지지 않고 계속됩니다.
혹 내가 죄를 범해도 그 사랑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죄 짓지 않고 살려고 노력은 합니다만 그래도 종종 죄의 유혹을 받고 넘어지기도 하잖아요? 생각으로 죄를 짓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말로 남을 해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반복되는 죄의 사슬에 매여 주저앉아 버릴 때도 있구요. ‘하느님이 과연 나 같은 것을 사랑해 주실까? 이렇게 구재불능인데---’ 하고 허탈감에 빠지게 되죠. 그럴 때에도 하느님의 사랑은 절대로 끊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실수해서 사람들에게 비아냥거림을 당하고 “저게 인간이냐?” 하고 욕을 먹을 만큼 처참한 지경에 처한다 해도 하느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그 자리에 나와 함께 계셔서 그 고통을 함께 받으십니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랑이 얼마나 높은지 우리를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
“긍휼이 풍부하신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죄인인 우리를 하느님이 앉으신 하늘 보좌에까지 끌어올리신 사랑입니다. 비천한 우리를 높이 올려서 예수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꿔 놓기를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모양이 다 제각각이지요?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불러 하느님 나라로 들이시면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승리하신 주님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자기 우편에 앉히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싶어 하잖아요? 남자에게 명예가 있으면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과 그 명예를 나누기를 원하겠지요? 남자에게 재산이 있다면 그 재산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재산일 수도 있어요. 모든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다 함께 하기 원하는 게 사랑하는 사이 아닙니까? 우리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느님으로부터 받아 누리는 모든 권세와 영광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수준에까지 우리를 끌어 올리기 원하시는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의 높이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또 그 사랑의 깊이는 얼마나 깊을까요? 죽음의 바다 깊은 곳에 숨은 사람도 건져 올릴 수 있을 만큼 깊습니다. 지옥의 흑암이 아무리 깊을지라도 십자가의 빛이 뚫고 들어가지 못할 만큼 어둡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ㅇ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으니까요. 그것으로 모자라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비참한 죄수의 자리에까지 내려가셨으니까요. 우리를 위해 내려갈 수 있는 데까지 내려가신 것이 그 사랑의 깊이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말씀을 파고 들어가 하느님의 사랑을 재어 보세요. 알면 알수록 놀랍습니다. 풍성해집니다. 은혜에 감격해 날마다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의 힘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 신비한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사랑을 더 알기 원하고 더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옥한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