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쟁이가 된 점장이 (3)
조선의 삭개오
믿음 생활을 시작 한 후, 그의 생활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불경과 산통을 없앤 것은 물론, 그동안 ‘남을 속여’모은 재산을 정리하니 그 때 돈으로 ‘3천 냥’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처분할까 기도하던 중에 강도가 들어 빼앗아 갔다.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을 불의한 방법으로 사라지게 하시네”하며 살던 집을 생활이 어려운 친구에게 주고 빈손으로 무작정 길을 떠났다. 그리고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에게 ‘조선의 삭개오’라는 별명이 붙었다.
처음엔 “명복 백장님이 천주학에 광(狂) 들렸다”는 소문이 돌더니, 오래지 않아 “백장님이 예수 믿고 새 사람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타고난 재치와 말솜씨로 그의 설교는 웃음과 눈물의 연속이었다.
짧아야 2시간, 어떤 때는 4시간을 넘겨 청중들이 모두 나간 줄도 모르고 텅 빈 예배당에서 혼자 설교한 적도 있었다
1899년 정식으로 남감리회 전도인이 되어 장단과 파주를 거쳐 개성, 평양, 철원, 김화, 평강, 서울 등지에서 전도하였고 말년에는 개성에 정착했다. 그의 전도를 받고 개종한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개성 남부교회를 비롯해 장단읍교회, 감바위교회는 그가 직접 개척하여 설립한 교회들이다 (“백사겸 씨의 실화”, <기독신보>, 1933.10.18.).
그는 믿음 생활을 시작한 직후부터 어린 아들 백남석(白南奭, 연희전문 영문과 교수)이 성경을 읽어 주면 그걸 듣고 외워버려 ‘걸어 다니는 복음서’가 되었다. 그의 설교와 삶이 성경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노래 실력도 대단하여 100절이 넘는 찬송가를 여러 곡 만들어 과거 경 읽던 가락으로 불러 제치면 청중들의 감동을 자아냈는데,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회심행도가’ 제2장 ‘인생을 지으심’의 일부다. 이는 바로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생을 내시기 전에
천지만물 먼저 내어 의식거처 예비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녀인생 지어내실 때
흙을 빚어 육신 짓고 귀한 영혼 넣으셨네.
주의 성질 모범하여 선한 양심 지으시고
생명 호흡 기거동작 기력정신 주옵시고
귀한 영혼 천한 육신 선한 양심 지은 후에
영생복락 주셨으니 남녀인생 되었도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인생 내신고로
결코 죄로 사망 없이 주와 같이 영생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