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쟁이가 된 점장이 (2)
백일기도 끝에 받은 ‘빨간 책’
고민하던 백사겸은 ‘참된 도’를 찾기로 했다.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의복을 정제하고 제단 앞에 끓어 앉아 자기 나름대로 만든 기도문을 외우면서 축원하기 시작했다.
“오, 하늘의 일월성신님이여! 이 더러운 인간의 축원을 하감하사,
소란한 이 때를 평정시켜 주시고 시화연풍하게 하소서’
(박소천, 「숨은 보배」, 동양선교회성결교회 출판부, 1938, 24쪽).
10년 넘게 기도를 드렸다. 그래도 응답이 없자, ‘100일 작정 기도’를 시작했다. 매일 저녁별이 뜰 때 시작해 이튿날 새벽별이 질 때까지 ‘태을경’을 암송하며 철야 기도를 드렸다. 정성을 다해 100일 기도를 드린 마지막 날 아침, 낯선 방문객이 그의 집 안으로 들어와 짐을 풀더니 ‘표지가 빨간 책’을 꺼내 그에게 쥐어 주었다.
“이것은 예수 믿는 도리를 적은 전도지인데 한번 읽어 보시지요.”
그는 서울에서 내려와 고양읍 일대를 돌아다니며 성경책과 전도지를 팔며 전도하던 남감리회 소속 매서인 김제옥이었다. 기독교를 서양 오랑캐 종교로 알고 있던 백사겸은 ‘예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뿌리치고 싶었지만 체면상 그러지 못하고 책을 받아 들었는데, 그 순간 독한 벌레가 손에 닿은 듯 ‘섬뜩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사겸은 그것을 읽을 수도 없었거니와 읽을 마음도 없어 부인에게 버리듯 던졌다.
‘백일기도 헛 했다’는 생각에 실망감만 들고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갔다.
점치러 오는 손님들도 귀찮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꿈을 꾸었다. 그는 꿈속에서 두 눈을 뜬 상태로 ‘하늘나라’로 들려 올려졌다.
거기서 어떤 기인이 은으로 만든 산통을 주면서 “나는 예수다. 내가 주는 산통은 의(義)의 산통이니 받아 가져라”고 했다. 꿈을 꾸고 나니 마음만 더욱 심란했다.
얼마 후 장인이 올라 오셨다. 딸을 통해 저간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장인은 문제의 ‘빨간 책’을 가져와 읽어보라고 했다. 「인가귀도」라는 제목의 소책자인데 남을 속이고 우상을 숭배하던 가장이 방탕하여 패가망신하다가 예수를 믿고 새사람 되어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건넛방에서 부인이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있던 백사겸은 어느새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마음속에서 뜨거운 감동이 솟구치면서 ‘참도’를 믿기로 했다.
“꿈에 얻은 은 산통이 바로 이 책이구려! 이제부터 점치고 경 읽는 일을 그만 두겠소.”
결단한 그 날로 손님을 받지 않았다. 김제옥을 찾아가 신앙을 고백했고,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그 날은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설립한 고양읍교회가 창립된 1897년 5월 2일, 다른 20여 명 성도들과 함께 그의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